생각해 보면 유럽여행은 평생 볼 그림들을 그 짧은 한달이라는 시간동안 보고 왔으니 아직까지도 내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은 그림이나 이야기 거리들도 많다.
사실 내가 알수 있는 그림들은 많이 한정적이라 그 유명한 모나리자나 다비드상 등이나 보고 오면 그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미술관을 갈 때마다 감명은 받고 여러 감정은 느낀 그림들은 사실 위와 같은 유명한 것들이 아니라
어디서 본듯 만듯 하면서도 계속 여러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그림들이였다.
그중, 유럽의 3대 미술관이라고 할 수 있는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나머지 두개는 파리의 루브르,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사 박물관에서 본 왕녀 마르가리타의 초상화는 아직도 기억에 오래오래 남아 이렇게 포스팅을 한다.
넓은 왕궁 같은 방에서 본 왕녀 마르가리타의 초상화는 단순히 한 그림만이 아니라 어릴적부터 숙녀로 성장할 때까지의 그림으로 단지 그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 그녀의 성장과정과 대충 그녀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그림이다.
무엇보다 같은 사람을 대상으로 (자세까지 똑같다....) 왜 저렇게 많은 초상화가 남겨져 있었는지 나에게는 영 수수께기같은 그림이였다.
열심히 구글을 검색한 결과, 당시 스페인 함대 등으로 황금시기에 있던 함부르크 왕가의 계보를 잇던 스페인 왕국에 펠리페 4세라는 왕에게 왕자와 딸이 있었지만 왕자는 그만 일찍 죽고 하나의 딸만이 남게 되었다. 그녀가 바로 이 그림의 왕녀 마르가리타다.
생각해 보시라... 그 강력한 왕궁에서 유일무이한 자식인 그녀는 왕궁의 고귀한 존재이자 그만큼 엄청난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겠는가... 어린 나이부터 삼촌 뻘인 신성로마제국의 레오폴드 1세와의 정략결혼이 정해졌던 것은 당연한 순리였을지도 모른다.
딱 보아도 겨우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을 때의 나이로 보인다. 그래도 굳은 의지와 당당한 얼굴로 의자 위에 손을 얻고 있다. 참고로 저 포즈는 오로지 왕가의 가족만이 취할 수 있는 자세였다고 한다.
5살 정도의 왕녀 마르가리타. 이 때까지만 해도 어린 얼굴에 총명과 생기가 더해보이고 천사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이때까지 자신의 운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성장과정을 그림으로 보는 것만으로 매우 쏠쏠한 재미를 준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에서 미세한 차이가 보여지고 있다. 바로 얼굴.. 점점 얼굴이 길어지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도 유명하게도 함브르크 왕가의 오랜 저주라 할 수 있는 주걱턱 얼굴, 당연한 결과이다. 그녀의 부모님도 친인척 관계였고 그 위의 윗대에도 이어져온 주걱턱, 합브르크 왕가내 다른 왕족은 주걱턱이 너무 심해져 음식을 씹거나 삼기기도 너무나 힘들었고, 언제나 침이 입 밖으로 흘러나와 상시 옆에서 침을 닦는 시종이 있다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 바로 위 그림이 푸른색 드레스 다음으로 옆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당시 얼마나 놀랬는지 모른다. 다른 사람을 가져다 놓은줄 알았으니깐..... 그 사이에 그렇게 변해버리다니....
이 그림을 그린 작가, 벨라스케스는 당시 스페인 왕실의 전속 화가로 이 일련의 초상화들을 그리고 그 유명한 '시녀들'까지 그녀를 주인공을 그림을 그렸다.
추측해 보건데, 왕실에서 그녀의 존재와 얼마나 그녀가 사랑을 받았었는지도 이 벨라스케스의 많은 그림에서 그녀를 발견함으로 알 수 있고, 또한 점점 심해지는 주걱턱과 그녀의 미모를 미화시키기 위해 이 화가는 많은 노력에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왕녀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아무튼 왜 이 스페인 왕녀 초상화가 오스트리아 박물관에 연속으로 전시되어 있는지 생각해 보면, 답은 저절로 떠올려진다. 이 그림들은 어린 시절부터 약혼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레오폴드 1세에게 왕녀가 어떤 모습인지 어떻게 자라나고 있는지 보여주는 일련의 기록물이였을 것이다. 당연히 실제로 모습을 볼 수는 없고, 미래의 남편에게 그녀의 성장과정을 보여주면서 계속 두 왕실간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끈같은 역활을 해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신성로마제국으로 간 그녀는 남편과 여러 문학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22세의 나이에 아이를 낳다가 요절하고 말았다.
위는 그녀의 아버지 펠리페 4세가 죽었을때, 상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이다. 그녀도 얼마 후,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스페인 내의 합부르크 왕가는 끝이나게 된다.
위 그림을 알고 계시나요? 유럽에서 가장 연구가 많이 되었다는 그림, 시녀들입니다. 바로 저 가운데 있는 왕녀가
이미 눈에 익은 왕녀 마르가리타, 그 왼쪽에 붓을 들고 있는 화가는 바로 스페인 왕실의 전속화가 벨라스케스입니다.
왜 논쟁거리 됐는지 구도를 보면 바로 파악하실 수 있습니다. 그림의 대상이 그림 속에서는 관람자가 되고 있고 실제 주인공은 저 너머 거울에 있기 때문입니다.
거울에서 펠리페 4세 부부가 자신의 유일한 자식 왕녀 마르가리타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Connect to opportunity > 관심있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로벌 어페럴 기업으로 환골탈태하려는 유니클로 (0) | 2023.05.18 |
---|---|
바비리스 미라컬 스타일링 클래스 후기 (2) | 2013.08.31 |
두 여자의 시대를 뛰어넘는 연결고리... 요리 영화 "Julie & Julia" (0) | 2010.08.15 |
◆VESPA 내 간지는 너가 만들어 주는 구나....◆ (0) | 2009.09.25 |